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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몰입 감상평] 센추리 : 앤램



묵직한 잉크의 냄새가 툭 터지고 이어서 낡은 종이 위로 뭉쳐 번진다. 아이고 이런ㅡ,   짧은 한숨과도 같은 탄식이 번지는 잉크처럼 조용한 공간을 울린 뒤에야 무언가를 닦아내듯 연신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언제 달그락거림이 있었냐는듯 잠깐의 조용함 이후 갑작스럽게 창문의 바깥을 가로지르는 검은 그림자와 우르르 울리는 땅울림이 들리고 서둘러 뛰쳐나가는 발소리와 함께 대형 짐승이 그르렁거린다.


" 야 이 용놈아! "


바깥을 나오니 이거 원 난리가 난리도 아니라고, 열심히 일궈놓은 밭은 하늘에서 착지한 녀석들의 발에 뒤집히고-그 와중 발에 밟혀 으깨진 것 포함해서-천방지축이 따로 없는 것처럼 삐룩대며 따라 다니는 새끼용들까지 새삼스럽게 머리가 아파온다. 자, 여기서 새삼스럽게 용이 날아다니는 세계에 똑 떨어져 밭 일구며 살아가는 현대인은 어떻게 해야할까? 


" 아이고-, 아이고, 내 귀한 감자가 죄다 뭉그러지게 생겼네..!!!! "


뭐긴 뭐야, 그냥 감자나 붙잡고 울어야지.


마치 자기들은 안 그런것마냥 붙잡고 우는 감자를 물어다주는 행태에 기가 막혀 짜내려던 눈물도 쏙 들어가려던 찰나에 보란듯이 우적우적 감자를 씹어대는 발요르드 황야의 모습에 뒷골이 당겨왔다. 아니 나한테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있으실거 아니예요, 정말. 

슬픈건지, 화가 난 건지 모를 기분을 조용히 맛보다가 일단은 다가와 주둥이부터 들이대는 새끼용들의 콧등을 벅벅 문질러주었다. 오냐 오냐, 물 마시자 물. 양동이에 떠놓은 물을 용들이 마시기 쉽도록 마구유에 냅다 쏟아넣기 시작하자 새끼용들이 물에 얼굴이 젖도록 파묻고 하늘로 고개를 처들길 반복하며 물을 퍼마신다. 여전히 감자나 씹고 있는 저 얼룩점박이는 무시하도록 하자. 하, 저거 내 귀한 주식인데, 저 용자식. 


이 땅에 떨어진지도 약 이년이 훌쩍 넘어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얼룩하게 물들어 노랗고 빨간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처음 떨어진 날을 되새겨본다. 봄철 장마에 흠뻑 젖은 몸이 차게 식어가고 두려움에 터트린 숨이 허옇게 산의 공기를 물들였었다. 발에 걸린 용의 꼬리에 울음을 터트렸으며 죽기 싫어 젖은 흙을 움켜쥐었던 것도 같다. 기절하고 싶어도 기절하지 못하는 굳건한 제 정신을 얼마나 저주했던지. 끝내 용이 기다란 목을 쳐들고 자신을 바라보다 머리를 자신에게 내렸을 때 죽었다 싶었건만,  하늘에서 벼락같이 내려온 갈누르의 뒷발에 잡아채여 이 낡은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낡은 집 안에 있던 용에 미친 노인과 함께 지내며 이 세상에 적응해갔다. 내가 지내던 세상이 아닌 것도 이제는 안다. 이 곳은 정보의 바다랍시고 손가락만 몇 번 톡톡 두드리면 어떤 정보든 나오는 세상이 아니였고, 몸으로 손으로 하나씩 더듬어 배워야 하는 세상인 것이다. 그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기까지가 적어도 반년은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끼에에악ㅡ, 또 다시 상념에만 빠지려 하면 울어제끼는 저 발요르드 황야 덕분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뒤집어진 밭에서 튀어나온 감자알들을 주워 낡은 나무통 안에 던져넣는다. 


" 하, 이걸 또 뭐 해먹나. "


저번에는 그냥 삶아 먹었고, 저저번에는 으깨먹었고.. 밀가루 엄청 귀한데 그냥 눈 딱 감고 수제비를 해먹을까.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한 고민으로 나무통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던 중에 갑자기 어둑해지는 주변에 고개를 돌리자 마침 근처에 착지 중인 올문드가 보였다. 착지한 올문드의 입이 벌어지고 뒤이어 구르르르 소리와 함께 수많은 물고기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언제 봐도 늘 기가 찬 한 마리의 가마우지 같은 모양새에 입이 저절로 다물린다. 칭찬을 바라듯 머리를 들이미는 녀석의 머리를 손가죽이 벗겨져라 벅벅 문질러주며 흐린 눈동자로 땅 위에서 퍼덕이는 물고기를 쳐다봤다. 


그래. 그냥 물고기 비늘 벗겨다 감자랑 같이 꼬치에 꽂아서 구워 먹자. 마음 편하게.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하늘에 용들이 마른 흙바닥 위로 모이기 시작한다. 털이 아닌 비늘이다 보니 부쩍 추워진 날씨에 대비하기 위한 행동으로 마른 흙바닥 위, 주변으로 불을 뿜어 원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른 흙이 불에 구워져 열기를 가지고 타닥이기 시작한다. 훨씬 따뜻해진 주변의 온도에 만족스러운듯 중앙으로 새끼용들을 모아놓고 그르렁거리는 용들의 나직한 노랫소리가 어서 저녁이나 준비하라는 신호처럼 보여 한숨이나 푹 쉬고 낡은 집 안의 도마와 식칼부터 챙기러 발걸음을 돌린다. 세상 살기 참 별거 없으면서도 어렵다는 생각이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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